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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itique

준비된 국민, 시대에 역행하는 두 거대 정당

by NPS 2022. 9. 12.

모든 재난상황에서 국민들은 힘을 합쳤다. 먼 역사를 들먹일 필요도 없다. 태풍 힌남노가 한반도를 강타했을 때 국민들의 모습을 돌아보자. 사람들은 내 집 네 집 가리지 않고 함께 손을 모아 물막이벽을 세우고 상가를 보호하기 위해 대형트럭으로 방어벽을 세웠다. 군인들은 수륙양용 장갑차를 동원해 국민을 지켜냈다. 피해가 발생한 지역에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복구에 온 힘을 쏟았다.

 

힌남노 보다 먼저 발생한 여름 홍수 때는 어떠했나. 자기 생명이 위험한데도 타인의 생명을 구하고 공동체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재난 영화 속 주인공이 된 사람들이 있었다. 온갖 쓰레기로 가득 차 쏟아지는 빗물이 빠져나갈 수 없었던 배수관을 뚫고 있었던 시민을 떠올려보자. 물에 잠겨가는 반지하 방 가족을 구출하기 위해 방범창을 뜯어내며 울부짖던 이웃을 생각해 보자. 자기만 생각했으면 모른 척 피해 갈 수 있었을 텐데 그들은 타인과 공동체 앞에 자신을 내놓았다.

 

연이은 두 차례의 자연재해를 겪으며 현재 우리 정치의 심각성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평상시에는 이런저런 갈등과 대립으로 서로를 비난하고 욕설을 퍼부어대지만 시민들은 위험과 위기 앞에선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되었다. 각자의 욕망과 욕심, 극히 이기적인 경쟁으로 가득 찬 일상이지만 연출되지 않은 이타성 또한 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결국 타인을 보호하고 빛나게 하는 것이 곧 나를 보호하고 빛나게 하는 것이리라.

 

그런데 민주당과 국민의힘, 두 거대 정당은 철저하게 이에 역행한다. 진보와 보수라고 말하기도 부끄럽다. 그냥 민주당과 국민의힘이라는 두 정당의 이름으로 범주화하는 것이 낫다. 두 정당이 만들어내는 퇴행의 정치는 최근 몇 년 새 더욱 심해졌다. 3당도 있고, 4당도 있을 때는 이 정도로 망가지지 않았던 것 같다. 진보와 보수 혹은 좌파와 우파라는 정치적 노선과 정책적 지향점을 놓고 벌어지는 경쟁이나 갈등이라면 차라리 손뼉 칠 만하다. 그러나 이도 아니다. 노선과 정책을 놓고 보면 두 거대 정당의 차이를 크게 발견하기는 힘들다. 서로 다른 것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같은 것을 욕망하다 보니 싸움이 더 격해진다. 집권이나 국회 다수 의석 쟁취 등 정치적 권력 획득이 정치적 최종 목표가 되다 보니 이념, 노선, 정책, 가치는 중화되어 유사해진다. 표를 긁어모을 사람과 세력 결집, 선전선동, 언론플레이, 유리한 정치환경 만들기와 같은 정치공학이 두 정당을 지배한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상대 당만 없어지면 된다고 생각하는 강성 당원들과 강경파 정치인들이 두 당을 주도한다.

 

두 거대 정당이 지배하는 정치 자체가 가장 큰 위기이다. 지향하는 이념, 노선, 정책, 가치의 차이가 명확하고, 이를 기반으로 민주주의적 경쟁이 제한 없이 이루어지는 것에서 정치가 발전한다면 우리의 정치는 심각하게 퇴행적이다. 정당 간 민주주의적 경쟁의 자리는 적대와 혐오, 조롱과 무시의 반(反) 정치로 대체되고 있다. 두 거대 정당으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전 사회적인 차원에서 반정치의 효과가 가속화되고 있다. 선거는 누군가를 적대하고 혐오하고 조롱하고 무시하는 캠페인으로 점철된다. 유튜브와 SNS에서는 상대 당이나 정치인들에 대한 적개심과 혐오감을 자극하는 메시지가 더욱더 거침없이 생산되고 확산된다. 정치인들 또한 퇴행적인 현상과 흐름에 맞서거나 제동을 거는 정치를 포기하거나 활용하고 있다.

 

그러니 엄청난 중요성을 띤 국내외 문제들은 학자나 소수 전문가 혹은 몇몇 시민단체 활동가들의 관심에 머물거나 묻혀버린다. 여야, 좌우, 진보 보수를 넘어 함께 고민하고 힘을 모아야 할 사안들에 대한 공동 대응의 틀을 만들어내는 것을 기대할 수도 없다. 정치인들이 말로는 민생, 신냉전 등 급변하는 국제정세, 고령화, 지역 소멸, 불평등 심화와 같은 주제들을 꺼내지만 그 어떤 것도 협력과 합작 정치의 대상으로 부상하지 못한다. 큰 변화와 위기 속에서 싸움의 주제와 강도, 범위를 조율하고 협력의 정치를 창출해 내려는 책임감 있는 정치인을 발견하기 힘들다. 매일 특정 정치인이나 대통령, 그리고 그의 배우자나 가족, 측근들에 대한 비난과 고발이 정치를 대체해버렸다. 사람들은 이미 지쳤다. 정치에 대한 둔감함을 넘어 불감증의 상태에 빠져 있다.

 

다시 한번 돌아보건대, 국민들은 늘 준비되어 있는데 두 거대 정당은 심각하게 퇴행적이고 부끄럽다. 우리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