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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itique

종편 시사토크쇼의 출연자들을 그냥 두고 보지 말자

by NPS 2016. 7. 6.

이영주(성균관대 사회과학대 연구교수)

 

종편의 시사토크쇼는 정치를 철저히 싸움판의 볼거리로 만들고 이를 시청자에게 판매하는 전형적인 비즈니스 상품이다. 시사토크쇼는 대량생산에 적합하다. 스튜디오, 진행자, 고정 출연자와 재빨리 섭외된 ‘종편 스타일’ 출연자, 그리고 이들 간에 오고 갈 이슈라는 기본 요소들만 갖추어 놓으면 오랜 기획과 준비, 리허설과 사전 평가 작업 없이 곧바로 시청자들에게 전달될 수 있다. 재빨리 만들어지고 쏟아지는 말 속에서 정치는 하나의 게임물이 되고 시청자들은 게임화된 정치를 소비하는데 익숙해진다. 종편 채널들은 정치인이나 정당, 서로 대비되는 집단들 간의 갈등과 대립 상황을 파고 들어 마치 경기 중계를 하듯 중계자나 해설자들을 배치한다. 선명하게 구분된 진영과 세력, 명확하게 설정된 경기의 진행 상황, 이 경기의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지를 예측하고 경기 과정에서 발생하는 흥미로운 점들을 부각시키며 이를 둘러싸고 토론이 가속화된다. 거칠고 큰 목소리, 집어 삼킬 듯이 물고 늘어지는 공격성, 어떻게 해서든 보호하고 지지해야 할 대상을 향한 충성스러운 수사의 전개, 선정적이고 자극적이며 표피적인 단서들의 나열, 찌라시 저널리즘에 가까운 카더라식 발언 등이 시사토크쇼를 지배한다. 출연자들은 자신을 부각시킬 수 있는 수사 스타일이나 제스추어, 강경 발언을 추구한다. 평론가들의 지나친 쇼맨십이나 자기 자랑식 평론, 함께 출연하는 다른 평론가의 진단에 대해 계속 딴지를 걸거나 자기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강요하는 듯한 태도, 평론가들끼리 장난치거나 윽박지르듯이 주고 받는 말들과 형님, 선배 등 사적인 호칭으로 상대방을 지목하면서 출연자들끼리 장난치듯 주고받는 대화 등 종편 시사토크쇼는 노골적인 정치 쇼 비즈니스이다. 그리고 종편 스타일의 시사토크쇼는 지상파가 모방하고자 하는 제1순위 프로그램 포맷이 되었다. 

 


종편의 시사토크쇼나 보도 프로그램들의 출연자들은 자신들의 입을 통해 대중들의 정치적 의식과 판단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정치-미디어-대중을 연결하는 결정적인 고리이다. 이 말은 곧 평론가 혹은 출연자로 불리는사람들이 특정 정치 집단과 대중 사이에서 자신의 정치를 행하는 존재라는 것을 의미한다. 출연자들은 종편과 같은 미디어를 활용해 자신의 영향력을 키우고 이를 발판으로 정치 세력이나 권력, 기업 등과 필요한 거래를 할 수 있게 된다. 평론가들은 자신이 활동할 수 있는 미디어를 찾고 이들에게 확실한 평론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시청률을 높이는데 기여함으로써 자신의 위치를 평가받고자 한다. 또 높은 평가를 받는 평론가들은 이를 자신의 자본으로 내세워 여러 집단들과 거래를 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종편의 출연자들은 종편 스타일의 시사프로그램이 필요로 하거나 요구하는 형식과 내용들에 대한 수용력이 크다. 과잉, 막말, 선정주의, 예능성, 편향성이라는 종편 스타일 시사프로그램의 요소들을 출연자들이 체화하고 구현해야 하는 것이다. 또 이들은 특정 성향의 정치 집단 중 어느 한 쪽에 철저히 복무해야 한다. 이것이 시사프로그램의 내적 긴장성을 높임으로써 시청자들의 관심을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계속해서 어떤 누군가를 위한 정치적 전사가 되어야 하며, 종편이라는 무대는 이 전사들의 팽팽한 전투를 위한 공간이 된다.
종편의 전사들은 그들의 공과에 따라 정당이나 정치권에 영입되거나 정치권으로부터 배제되기도 한다. 2016년 1월 10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총선을 대비해 6명의 종편 출연자들을 영입했다. 이중에서 전 삼성그룹 변호사였던 김태현 변호사는 종편3사에 걸쳐 가장 많은 중복 출연 기록을 가진 인물이기도 하다. 이 영입 인사들은 종편에서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부를 옹호하고 보호하는 평론들을 도맡아 하면서 여론에 영향을 미쳤던 사람들이다. 종편과 지상파 등 방송에서 권력에 대한 충성심을 보일수록 그 권력 집단 내부로 진입할 수 있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는 경우로서 방송은 더욱 더 충성스로운 전사들의 무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보수우파 성향의 출연자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진보좌파적 성향이라고 구분되는 출연자들 또한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이나 정당을 끊임없이 옹호하고 대변하며, 보호하고 정당화하려는 노력을 한다. 또 자신이 싫어하거나 지지하지 않는 혹은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이나 정당과 경쟁하는 집단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조롱, 혐오, 폄하, 비난의 발화들을 내뱉는다. 이를 통해 보수우파 진영 뿐만 아니라 진보좌파 진영에서도 자신들의 논리들을 선명하게 대변하는 출연자들에 주목하고, 이들에게 다양한 보상을 주는 거래관계가 형성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최근 더민주당의 비례대표 후보에 출마한 진보진영으로 분류되는 한 출연자는 철저하게 더민주당을 옹호하고 지지하는 토론들을 지속적으로 전개했다.
종편에서 활동 중인 출연자들은 교수, 변호사, 평론가, 언론인, 보좌관 등 정치권 출신 인사, 여론조사나 사회조사 전문가 등 글과 말로 대중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직업을 대표하는 사람들로 구성된다. 이들은 대부분 극우와 보수 및 중도보수의 정치 성향을 가지고 있으며, 진보적 성향의 출연자를 발견하기는 어렵다. 보다 실질적인 감시와 견제 장치가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종편 시사토크쇼 출연자들의 정치적 편형성은 텔레비전을 과잉되고 극단적인 전쟁의 무대로 구성한다. 저널리즘과 방송에 요구되는 합리적 규범과 윤리가 힘을 발휘하기 어렵다. 출연자들에게 종편 시사토크쇼는 정치적으로는 확실한 정치적 진영의 구축자이자 지원자로서 활동하는 것과 함께 경제적으로는 매월 수 백 만원에서 수 천 만원의 수입을 올릴 수 있는 통로가 된다. 또 출연자들의 개인 과거사로부터 형성된 특정 대상에 대한 적개심이나 반감, 선호 그리고 자신의 정치적 성향이 평론과 토론의 과정에서 직접적이고 강력하게 반영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사실 종편3사의 시사토크쇼는 보수우파 정치집단과 권력의 전위라고 할 수 있다. 신문 시장은 아주 견고하게 보수우파 언론사의 독과점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한겨레신문이나 경향신문 등 2-3개의 신문을 제외하면 나머지 신문들이 모두 보수우파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 KBS와 MBC는 철저하게 권력에 예속되어 있고, 이사회와 경영진들은 권력이 요구하는 방송 제작과 저널리즘을 실천하는 대중 제조/조작 기계들이 된 상태이다. 이들 또한 권력이 요구하지 않아도 스스로 권력의 핵심부로 진입하기 위한 충성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인터넷 포털 뉴스 서비스에 대한 통제와 훈육을 위해 이명박,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이 벌이고 있는 일들도 이미 알려져 있다. SNS 감시와 감청을 위한 권력의 시도들이 끊이지 않고 정부와 새누리당은 ‘테러방지법’과 같은 법률을 제정해 아예 이를 합법화할 수 있는 장치를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종편은 보수우파 권력의 언론 전략에서 가장 전위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종편의 탄생 자체가 이같은 정치적 목적을 포함하고 있었다. 종편 저널리즘의 문제는 크게는 이러한 보수우파 권력의 언론 전략의 측면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종편은 보수우파의 세계관을 지지하는 대중들을 제조하는 전위이다. 그래서 종편은 이 역할을 중단할 수 없다. 이것은 권력의 요구만이 아니라 자신들이 지켜내야 하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방송 채널이 많아짐에 따라 드라마와 오락 프로그램의 분산 효과는 나타나는 반면, 뉴스와 시사 프로그램의 집중 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 말은 곧 지상파 3사와 종편 3사를 통해 분배되는 뉴스와 시사 프로그램이 만들어내는 과잉화된 보수 여론의 집중화 효과가 상상 이상으로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하에서 상대적으로 균형잡힌 지상파 방송의 저널리즘은 저널리즘의 진보라는 관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물론 이 당시에 보수 야당은 지상파 방송의 저널리즘이 매우 친정부적이고 친권력적이라고 비난했다. 그래서인지 이명박 정부 이후 언론에 대한 뉴라이트의 공격과 되말아먹기가 진행되었다. 지상파, 포털과 SNS, 종편의 우파 저널리즘 블록을 주도하는 전사들과 보상체계가 이같은 정치적 과정에서 형성되었다.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종편의 극단적인 퇴행성을 유쾌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리고 이 퇴행성도 정치적 거래와 보호 속에서 심화된다는 점을 안다면, 그 정치적 거래와 보호의 구조가 변화하게 되면 종편의 정치 보도나 프로그램들도 변화할 것이라고 기대도 해본다. 하지만 이것은 언론의 변화를 외적인 상황 변화나 압력에 의존하게 만드는 기형적인 구조의 재생산에 불과하다. 이러한 변화는 항상 일시적이고 불안정할 뿐만 아니라 미디어 장(場)의 내적 규범과 자율적 진화의 힘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미디어가 정치적 전사가 아니라 정치적 공공영역의 매개자가 되어야 한다면, 그러한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미디어 장의 헤게모니를 가져야 한다. 특히 방송이라는 공공성의 장소는 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을 통해서 이러한 일이 가능할까를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종편의 경우 내적인 자기 진화와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 종편 내부에 그러한 변화를 꿈꾸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최소한 상식적이고 합리적이며 공정한 공론장이라는 규범적 철학을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그렇다면, 종편을 견제하고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힘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누군가는 보다 민주적이고 진보적인 세력이 다수당을 차지하거나 집권해서 종편 재심사를 강화하고 종편의 운영자를 교체하는 방법을 기대할 수 있다. 누군가는 종편 자체를 폐지하는 급진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은 급진적인 방법 대신 종편의 내적 변화를 강제할 수 있는 규범과 제도적 보완을 요구할 것이다. 하지만 이같은 온화한 요구들이 지금과 같은 정치적 상황에서 실현될 수는 없다. 내부의 자율심의제도가 있다거나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같은 제도적 장치가 있다고 해서 종편의 변화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들은 종편을 보호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종편의 변화 혹은 개혁은 매우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종편의 저널리즘에 대한 감시와 모니터링, 분석과 비판적 보고서들이 아무리 많이 만들어진다 해도 종편은 이것의 압력에서 자유로울 것이다. 특히 총선이나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종편은 그야말로 지금의 정치, 경제, 언론 체제를 재생산해야 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시민사회의 비판적 개입 활동은 언제나 무력한 상태로 남아 있게 될 것이다. 다만 종편 저널리즘의 중심 무대에 있는 출연자들에 대한 감시와 비판 활동은 어느 정도의 효과를 만들 수도 있을지 모른다. 개인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비판과 해명에 대한 요구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출연자들의 활동을 감시하고 비판하며 이들의 문제들을 공론화하고 개선하려는 다양한 실천 방식들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 

2016년 4월 13일에 치러진 총선 결과가 언론의 정치적 편향성을 둘러싼 기존의 가설들에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즉 극도로 친정부, 친새누리당, 친보수우파의 미디어 지형(소위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표현되는) 속에서도 더불어민주당을 포함한 야당의 총 의석수가 더 많게 나타난 선거 결과는 미디어, 여론, 선거, 정치의 관계를 연구하는데 있어서 종편의 결정적인 영향력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종편이라는 무대의 정치적 전사들에게 자신들의 언어와 행위에 대한 책임을 언제든지 물을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