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난 이런 미디어와 소통의 공간들을 만나고 싶다
절망과 희망 사이
저널리즘이 얼마나 엉망인지 이젠 더 이상 부언할 필요도 없다. 영화 <변호인>의 한 대사처럼 “정말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다. 정부와 기업이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마을 사람들의 평생의 삶터를 파괴하며, 이에 반대하는 주민들을 쓰레기 처리하듯 걷어내며, 국가의 공동 재산을 국민의 동의도 없이 팔아먹으려는 거대한 ‘세일’이 비밀리에 진행되고, 공권력이 앞장서서 무법천지를 만들어가는 무한에 가까운 ‘비정상’의 사회에서 언론과 미디어는 이에 동조하거나 침묵한다. 국민을 빼고 나면 정부를 포함한 공적 영역이 극도의 비정상성을 향해 치닫는데 언론과 미디어만 놓고 보면 우리 사회는 별 문제없이 잘 굴러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 그들에게는 좋은 시절이다. 권력과 자본에 잘 보이면 언제든지 떡고물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정치판을 조정하는 권력까지 스스로가 가지고 있다. 언론은 지금 권력과 자본에 종속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권력과 자본을 조정하고 이 둘이 대립하지 않게 만드는 담론과 여론 조작의 권력을 마음껏 누리고 있다. 또 더 큰 미디어 자본이 되기 위해 시장을 독과점하고 커뮤니케이션 부문의 전면적인 시장화를 위해 ‘미디어 자본-국가’의 기초를 열심히 튼튼하게 구축하고 있는 중이다. 절망이다.
저널리즘이 엉망인 반면 미디어 오락은 희망적이다. 항상 무시당하던 케이블 채널의 드라마들이 고품질의 드라마를 선보이고 있고, 퇴락한 지상파의 오락 프로그램과 다른 새로운 형식과 감성의 오락 프로그램들을 통해 떳떳하게 방송의 한 축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지상파의 권력이 이렇게 도전받거나 해체될 수 있겠구나 하는 느낌들을 주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정치적 꼼수와 거래가 아닌 콘텐츠 자체를 통해 시청자와 공감하고 또 시청자의 좋은 평가를 이끌어내는 과정을 보면 방송의 작은 진보의 씨앗을 발견하는 것 같다. 그래서 약간 희망적이다.
2014년 시민들의 지혜로운 미디어 소비와 지지
온-오프라인 주류 보수 신문의 오래된 비정상성, 정치적 거래와 꼼수에 기반한 종편 채널의 미숙한 비정상성, 권력과 자본에 길들여진 한편 다른 방송 채널들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권력 아래 종속시키려고 몸부림치는 지상파 방송사, 누가 자신의 진정한 파트너인지 아직까지도 모른 채 수신료만 올려달라고 떼쓰는 공영방송, 아직 독특한 자신의 정체성과 색깔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이리 저리 흔들리며 어찌할 바 모르는 유료 방송 채널 등. 이것들은 절망의 요소이자 동시에 미디어 운동의 명백한 대상들이다. 따라서 여전히 우리는 주류 보수 미디어의 ‘정상화’를 위해 시민들의 힘을 모아야 한다. 미디어 학자나 미디어 관련 시민단체만이 아니라 시민들이 이 정상화를 어떻게 이끌어내야 하는지를 생각해야 하고, 그 방법들을 찾아 나서야 한다. 다행히 2014년 박근혜 정부의 국정 방향 중 하나가 ‘비정상성의 정상화’이니만큼 시민들의 든든한 우군은 확보된 셈이다. 더 많은 시민들이 주류 보수 미디어로부터 멀어지고 이들을 소비하지 않으며 더 좋은 미디어를 응원하고 소비하는 극히 또 다른 형태의 ‘소비주의’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더 좋은 미디어, 시민과 함께 하는 미디어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함께 경험해보는 2014년이 되면 좋을 것이다. 물론 우리에게는 <시사IN>이나 <녹색평론>과 같은 좋은 미디어가 이미 있다. 이런 좋은 미디어, 시민들의 든든한 동반자이자 시민들의, 시민들에 의한, 시민들을 위한 미디어를 만들어가는 더 많은 실천들이 필요하다.
중앙 통제적이고 소수의 판단과 결정에 의해 운영되는 주류 미디어와 달리 시민들의 보다 자유롭고 확장된 커뮤니케이션에 기여하고 있는 복합 통신 미디어. 완전히 통제로부터 자유롭지는 않지만 신문이나 방송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시민들의 자발적인 소통의 공간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전통적인 주류 미디어 영역이 비정상성에 토대하고 있다면, 인터넷과 SNS는 상대적으로 정상적이고 합리적인 다양한 의견과 토론들이 매개되는 전자적 공공영역의 가능성을 풍부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것은 희망의 요소이자 동시에 미디어 운동이 주목하고 더 진보시켜 나가야 하는 대상이다. 따라서 전자 공공영역을 왜곡시키거나 통제하려는 힘들에 대한 감시와 비판, 저항의 동력들을 만들어가야 한다. 결국 통신 기업이 시민들과 어떠한 관계를 맺고 어떠한 통신 문화를 만들어갈 수 있는가에 관심을 가지고 시민들이 통신 기업과 통신 미디어의 민주적 운영의 사회적 기초를 만들어내는데 참여해야 한다. 미디어 운동이 신문이나 방송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융합 미디어의 현실을 잘 이해하고 특정한 신문사와 방송사를 위한 미디어 운동이 아닌 ‘비정상성의 정상화’, 지금 우리 시민들의 수준에 부합하는 즉, 자유롭고 품격있고 합리적인 미디어에 대한 지지가 시민들로부터 시작되기를 희망한다.
'Critique'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지상파 방송사에 중간광고를? (0) | 2016.07.18 |
|---|---|
| 종편 시사토크쇼의 출연자들을 그냥 두고 보지 말자 (0) | 2016.07.06 |
| 진보를 빛나게 하는 진보의 언어를 제안하며 (0) | 2014.02.03 |
| 미디어와 정치, 떠들썩한 빈자리 (0) | 2014.01.23 |
| sns 시대, 고백하고 또 고백하라 (0) | 2014.0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