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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itique

편지쓰기의 정치미학

by NPS 2023. 1. 19.

편지를 쓴다는 것

 

전남 광주의 어느 태국 노동자의 편지.

 

두려움으로 고향을 떠나던 날, 제 가슴엔 손아귀에 꼭 쥔 비행기표의 낯선 이름보다도 더 또렷하게 찍혀있던 이름이 있었지요. 불법체류자보다도 더 무서운 가족이라는 이름이. 시키는 대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휴일도 없이 열네 시간씩 마스크와 안경 대신 가운 한 장으로 숨 쉬며 씻고 닦고 지웠던 일 년 반.

언젠가부터 다리에 힘이 빠지고 손발은 망치에 맞은 것처럼 아팠지만 백 만 원 중에 팔십만 원을 고향에 보낼 수 있었기에 아픔이 절로 지나가기만을 기다렸었지요.

, 그런데, 그런데요. 날마다 만졌던 그 약품이 가족을 조금씩 일으켜 세우던 나를 조금씩 앉은뱅이로 만든 독이었다니요. 한국말로 정상이라는 뜻으로 시작되는 노말헥산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 약품이요. 지금 제게 최소 이년이 걸린다는 병 치료보다 더 두려운 것은 팔십 넘은 나이에 과자를 팔러 거리로 나서야 하는 부모님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과 다시 한국으로 가서 치료받게 해주세요라고 타이로 쫓겨 가 울면서 편지를 쓴 친구처럼 되지 않을까 하는 가까운 걱정거리랍니다.“

 

수 많은 편지들이 우리에게 공개된다.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달라고 간청한다. 신문과 잡지, 라디오와 텔레비전과 같은 주류 미디어는 이같은 목소리를 차단하거나 억압한다. 엄청난 사태가 일어나고 그 사태에 대한 책임을 묻은 사람들의 비난이 거세질 때 미디어는 어설프고 간헐적으로 이들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그래서 이들의 편지는 특별한 주변부 매체들을 통해 전달되거나 온라인 공간에서 주로 발견된다.

 

편지쓰기는 매우 내밀하고 사적인 행위에 속한다. 종이에 쓰고 봉투에 밀봉하여 부치는 편지이든 전자메일이든 편지는 송신자와 수신자 간에 이루어지는 비밀스러운 대화이자 기록이다. 편지의 내밀성은 동시에 진실을 더 풍부하게 담아낼 수 있게 한다. 공표되는 기록이나 대화 보다 사적인 것이 보통 더 진실하듯이 편지는 편지를 주고받는 두 사람 사이에 진실성의 교환을 촉진한다. 물론 거짓과 속임수 편지를 쓰는 경우도 많지만, 우리가 편지를 보다 진실된 매체로 생각하는 것에는 큰 무리가 따르지 않는다. 지금은 대부분 이메일이나 카톡 같은 SNS에 의존하지만 여전히 종이편지를 쓰고 부치는 행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꽤 많다.

 

편지쓰기는 사적인 차원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공적인 편지쓰기도 많다. 어떤 이유에서든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읽어주기를 원하면서 사람들 앞에 공개되는 편지. 편지문학, 정치편지, 특정 대상이나 사건에 대한 의견편지 등 여러 유형의 공적인 편지들이 쓰여지고 공개된다. 사람들은 편지가 공개된 후 자신이 원하는 개인적-사회적 차원의 다양한 효과를 지향하며 편지를 쓴다. 또 공적인 편지는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 표현의 공적 수단과 통로에 접근이 어렵거나 제한적일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 의존할 수 있는 매체이기도 하다. 무엇인가를 말하고 싶지만 말할 수 있는 공간과 수단이 부재하거나 제한됐을 때 사람들은 편지에 의존할 수 있다.

 

편지쓰기의 정치

 

편지는 무엇인가를 보여주고자 하는 자, 그렇지만 억압되고 배제되며 주변부화된 자들의 목소리와 모습을 매개하는 상징투쟁의 매체이다. 따라서 이런 편지쓰기는 항상 정치적인 것이 된다. 편지는 그것이 구지 대량으로 생산되고 퍼지지 않더라도 반드시 읽어야 할 사람들을 향해 쓰여지고 감시나 검열을 피해 수신자에게 전달되며 보다 직접적이고 강렬한 교감과 메시지의 전달이 이루어지는 매체이다.

 

편지는 다른 글쓰기에 비해 자기 검열이나 따라야 할 기준들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온갖 비어, 속어, 은어, 욕설 표현이 가능하며, 편지쓰는 사람이 원하기만 하면 최대한 자유롭게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할 수 있다. 편지는 외부의 검열이나 감시자가 없다면 주고받는 두 사람 혹은 부분 집단 속에서 어떠한 내용이든 자유롭게 주고받을 수 있다. 그것이 혁명에 관한 것이든, 사랑에 관한 것이든, 누군가에 대한 비난이든, 과거의 추억이든, 미래에 대한 상상이든, 권력에 대한 조롱과 풍자든, 싫어하는 사람에 대한 소문 부추기기나 험담이든 상관없다. 편지를 쓰고 읽고 답장을 쓰는 문학적 공간은 따라서 매우 자유롭고 해방적이다.

 

랑시에르는 <문학의 정치>에서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정치를 정의내린다. 그에게 정치는 권력 행사나 권력을 위한 투쟁으로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또 정치는 공동적 삶을 규율하는 법칙의 존재만으로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정치는 공동체의 어떤 특정한 형태의 지형이 있어야 가능한데, 정치란 바로 특정한 경험들의 영역을 구성하는 것이다. 그런데 특정한 경험들의 영역을 구성하는 것으로 정치는 어떻게 가능한가? 랑시에르는 "(자기 일 외에는 다른 것을 살필 시간이 없는) 사람들이 분노하고 고통받는 동물이 아니라 공동체에 참여하면서 말하는 존재라는 것을 입중하기 위해 자기들에게 없는 시간을 가질 때에야 비로소 시작된다고 말한다. 정치행위는 새로운 대상들과 주체들을 공동의 무대 위에 오르게 하고, 보이지 않았던 것을 보이게 하며, 킁킁대는 동물로 취급되었던 사람을 말하는 존재로 만드는것이다(Ranciere, 유재홍 역, 2009, 11-12).

 

신문 지면이나 인터넷 공간에서 공개되는 편지, 사람들에게 읽혀지기를 기다리는 편지들은 말할 수 없었던 사람들, 말하는 것을 억압당하거나 제한됐던 사람들, 제도화된 언론과 언어의 무대에 오르지 못했던 사람들, 자신들의 말을 말로서 인정받지 못했던 사람들이 자신들을 가시적인 존재로 드러내며, 자신들의 삶과 생각을 공동체 내부의 공통적인 것으로 만드는 정치행위이다. 전태일의 편지, 장자연의 편지, 어느 태국 노동자의 편지, 그리고 동성애자로 커밍아웃하며 총학생회 선거에 출마했던 서울대 김보미의 편지 등. 이들의 편지는 공동체에 새로운 의미와 삶의 새로운 리듬을 창조한다. 문학으로서 편지는 인정받지 못한 자, 억눌린 자, 배제당한 자, 주변부 소수자들이 을 하기 시작하고 자신들의 편지 속에서 낱말과 사물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결합하며, 이 결합에 대한 인정을 요구하는 정치행위이다.

 

편지의 정치미학

 

편지의 정치는 보다 직접적이고 강력하다. 보통의 경우 편지를 쓰는 이는 자신의 편지를 읽고 자신의 낱말과 목소리를 인정해야 할 수신자를 특정한다. 명확한 호출 내지 호명의 행위이다. 이는 자신이 수신자와 동등한 위치에 있음을 선언하는 행위이다. “내가 너에게 편지를 쓴다는 것은 의 동등한 위치를 전제한다. 그리고 나는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에게 말을 하는 것이며, 이 말을 회피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포한다. 편지를 읽는 수신자는 다른 어떤 형태의 글보다 편지의 호출 앞에서 당황하고 주저한다. 기사나 비평이 수신자를 특정하지 않고 전달되어 언제나 실제적인 수신자가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달리 편지는 수신의 의무를 결코 피해갈 수 없다. 따라서 편지쓰기는 다른 어떤 문학보다 강력하게 정치적이다.

 

공개되는 편지, 보다 많은 사람들을 수신자로 겨냥하는 편지들은 보다 많은 사람들을 의미와 감각의 공동체로 끌어들인다. 즉 보다 많은 사람들이 수신자로 호출받는다. 편지의 직접적인 수신자 즉 편지를 수신해야 할 사람과 함께 더 많은 사람들이 이차적 수신자이자 송신자의 이중적 위치에 동시에 놓이게 된다. 공개된 편지를 대면한 우리들은 또 다른 송신자이기도 하면서(편지를 쓰는 이에게 지지를 보내게 되는 경우) 그 내용에 어떠한 방식으로든 응답해야 하는 수신자가 된다.

 

편지는 누군가에게 무엇을 해명하도록 요구하고, 어떤 행위와 말의 타당성을 요구한다. 만약 그 수신자가 지배자의 위치, 권력의 위치에 있다면 이들은 편지에 의해 무엇인가를 응답하고 행동할 것을 요구받는다. 물론 그들은 실제로 응답하거나 편지가 요구하는 행동들을 하지 않는다. 지배자와 권력자는 응답하지 않아도 되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편지는 응답을 요구할 수 없었던 자, 해명을 요구하지 못했던 자, 어떤 주장을 할 수 없었던 자들이 공동체 내부로 들어와 공동체의 성원으로서 시민권을 확보하게 만드는 민주주의의 매체가 된다.

 

또한 편지는 억압당했던 자, 침묵해야만 했던 자, 인정받지 못한 자들이 침묵과 불인정, 배제와 억압의 구조를 공유했던 사람들을 향해 복수를 가하는 수단이다. 논문이나 비평, 칼럼이나 사설 등은 누구나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특별한 누눈가만쓸 수 있다. 반면 편지는(그리고 문학도) ‘누구나쓸 수 있다. ‘누구나쓸 수 있다는 사실은 공동체 내부에서 매우 의미있는 정치적 지형을 만들어낸다. 공동체의 위계화된 질서와 제도 속에서 공적인 사안에 대해 누구나쓰고 말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억압과 배제의 구조를 공유하고 재생산하는 사람들을 향한 복수의 지형을 창조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오늘도 우리들에게 공개되는 편지들에 주목하자. 정치권력, 자본권력, 언론권력, 문화권력, 사회생체권력 등 수 많은 권력이 침묵을 강요하고 누군가를 이 사회로부터 배제하고자 그들의 권력과 이데올로기를 강화할 때, 이러한 권력과 배제, 차별과 멸시, 적대와 혐오를 온 몸으로 받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편지에 주목하자. 사적인 것이든 공적인 것이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