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 정치인이 그립다
낭만주의는 이전 세기의 신고전주의에 맞서 18세기 말~19세기 중반에 유럽에서 일어난 예술과 문학 운동이었다. 독일의 시인 프리드리히 슐레겔이 문학에서 ‘romantic’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는데, ‘문학이란 감정적인 배설물을 상상적인 형식으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빅토르 휴고는 이를 ‘문학의 자유주의’라고 했던가. 상상, 감정, 자유, 주관성, 개인주의, 자발성, 사회로부터 고립된 은둔생활과 같은 핵심어들이 낭만주의를 주도했다. 이성이 아닌 상상, 미에 대한 헌신, 자연에 대한 사랑과 숭배, 중세의 신화나 신비주의와 같은 과거에 대한 매혹과 몰입.....이렇게 워즈워스, 바이런, 셀리, 키이츠, 에머슨, 호돈, 에드가 알렌 포우, 쏘로우, 멜빌, 위트먼 등 낭만주의자들은 앞선 선배(신고전주의)에 반기를 들었다. 감정의 절제, 질서, 이성과 논리, 기술적 정교함, 균형, 내용 보다 형식의 강조, 명확함, 위엄과 단정함, 우아함을 추구했던 16세기~17세기 신고전주의 문학과 예술에 대해 낭만주의자들은 흥칫뽕을 날렸다.
신고전주의가 요즘 말로 하면 비꼬고 훈계하며 잔소리하는 꼰대스러운 문학과 함께 이성과 논리, 절제와 위엄, 명확함과 정교함을 표현하는 형식들을 채택했다면, 낭만주의는 꼰대에 맞선 자유분방한 신세대를 대표한다고 할까. 신고전주의는 작가가 잘 다듬어진 형식으로 독자나 수용자를 자신의 틀 안에 가두려 하지만, 낭만주의는 독자나 수용자의 몫을 더 중시한다고 볼 수 있겠다. 작가 혹은 말하는 자가 일방적인 권력을 행사하지 않고 독자(수용자)와 감정적 교감과 열린 커뮤니케이션을 중시한다고 할까.
가만히 돌아보면 산업화와 도시화, 대중계급의 형성과 함께 전개되는 18세기 말~19세기 초중반의 시대적 상황을 보면 낭만주의의 물결과 목소리가 커질 수 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자본주의와 시장, 도시의 삶이란 것이 한편으로는 개인과 자유주의, 감정과 상상력의 분출, 시장 소비자(문학 소비자나 문화 소비자)와 같은 요소들이 부상했을 터이니.
한참 시간이 흘러 갑자기 낭만주의의 정치를 생각해본다. 지금은 종방했지만 ‘낭만닥터 김사부’를 보면서 내 머리 속에는 ‘낭만’이라는 단어가 계속 맴돌았다. 김사부는 왜 ‘낭만적’일까? 김사부의 낭만주의는 무엇이었을까? 공익적 역할을 하던 병원을 온갖 술수로 가진 자들을 위한 최고 영리 병원으로 만들고자 하는 의료법인과 의사들에 맞서 병원을 지켜내고, 끝까지 어떤 사람도 차별하지 않고 생명을 지켜내는 모습으로 우리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었던 김사부와 그의 동료들이 만들어낸 낭만주의는 무엇이었을까? 사람 위에 권력 없고, 생명 위에 자본 없다는 식으로 오합지졸 막무가내 돌담병원 낭만주의자들은 병원을 지켜냈다. 권력자들이 이것 저것 따지며 된다 안된다 하고 있을 때 일단 죽어가는 사람부터 살리고 보자는 그들의 무데뽀 정신이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이런 낭만 정치인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뭐라 씨불어대싸? 인간이란게 자연과 주변의 것들과 그냥 같이 어울려 사는거지 하며 인간사회를 병들게 하는 불평등과 권력, 지배욕망에 맞짱뜨며 씩 웃어대는 정치인들 말이다. 정치가 너무 소심해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