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que

속도 정치의 시대, 공영방송의 선택

NPS 2021. 1. 24. 21:35

이영주(경기도의원/전환과 미래 연구소장)

 

로츠(Amanda D. Lotz)는 텔레비전이 토스터와 같은 단순한 기술이나 기기가 아니라 문화적 스토리텔링의 기술이자 수단이라고 말한다. 텔레비전은 가족과 사회 구성원들을 서로 모아 외부 세계와 이어주는 세계의 창이자 문화 화로(cultural hearth)"인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이같은 문화주의적 텔레비전의 관점은 유효한가? 전자 커뮤니케이션 기술과 미디어의 계속되는 진화와 변화가 텔레비전 산업과 생산, 유통, 소비에 이르는 과정에 부과하는 중첩적인 압력들이 전통적인 문화주의적 텔레비전론의 전향적인 해체를 요구하는 것은 아닌가? 최근 펼쳐지고 있는 텔레비전 산업 영역의 변화의 몸부림 또한 근대 텔레비전 체제의 해체와 탈/후기근대 텔레비전 체제로의 완전한 전환을 향하는 것이 아닌가? 이같은 질문들은 미디어의 시간 경제학과 시간 정치학 속에서 문화주의적 텔레비전론과 전통적인 근대 텔레비전 체제의 축소나 종말을 주장하고 요구하는 담론들에 대한 저항적 사유를 도모하는데 있다.

/후기근대 미디어 다원론은 앞으로 펼쳐질 미디어 환경이 대중들의 보다 참여적인 사회 형성에 기여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 전통적인 매스미디어에 도전하고 이를 대체할 수 있는 보다 참여적인 미디어를 촉진할 경우 보다 참여적인 사회가 활성화될 것이라고 본다. 또 매스미디어의 필연적인 비민주성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대중들의 참여를 확장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을 상상하는 것이 매우 필요하다고 보며, 미디어 네트워크의 확장과 오리지널 형식들의 다양한 변환들을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개념들의 확장을 지지한다. 전통적인 미디어 환경에서는 어느 한 개인이나 소수 집단이 작가이거나 발행자였지만, 새로운 네트워크 미디어에서는 수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화자이자 청자이며 청자이자 화자가 된다.

한편 디지털 네트워크 미디어 환경이 근대적인 문화적 가부장주의의 해체를 촉진할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우세하다. 방송의 경우, 지금까지 방송은 통합적인 보편 문화를 중심으로 대중의 계몽과 교육, 시민 공중의 형성이라는 20세기 근대 국가나 개발 국가에서 추구할 수 밖에 없는 국가적 가부장으로의 역할을 요구받았다. 또 숙련 노동자의 형성, 대중 교육의 실시, 대중문화의 형성이라는 국가적 기획 속에서 제도화되었던 공영방송 중심의 중앙적-권위적 방송 제도의 기능과 역할은 바로 이러한 국가적 과제와 연결될 수 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방송은 사회적 통제의 매개체이자 문화적인 획일화와 이데올로기적 도구로 비판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방송은 문화적 가부장의 지위를 잃고 수 많은 콘텐츠 생산과 유통의 주체 중 하나로 전락할 것이라는 진단이 우세하다. 플랫폼으로부터 자유로운 콘텐츠, 미디어 경험의 유동성, 개인화된 가격 체계, 전통적인 배급 창구의 소멸 등이 중앙집중형 방송 제도를 해체하는 요인들이다. 사람들은 이제 언제 어디서나 정보와 콘텐츠에 접속하기를 원하며 스스로 콘텐츠의 생산자가 되기를 원한다.

또 미디어 문화오락산업의 확장과 대중의 문화적 취향의 변화 속에서 문화적 중심이 더 이상 형성될 수 없다는 진단도 탈/후기 근대 자유주의 미디어론에 힘을 싣는다. 이는 미디어의 문화적 가치나 도덕적 가치를 강조했던 지금까지의 규범적 언어들이 무력화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서 대중들이 선택한 현실적 감각주의와 쾌락주의를 비난하기 어렵다는 것이며, 이는 지금까지의 미디어의 문화 규범에 강력하게 도전한다. 이같은 상황에서 전통적인 미디어 생산자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특히 공영방송과 같이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중앙무대이자 '문화 화로로 기능했던 지상파 방송의 선택지는 무엇이어야 할까?

앞으로 더욱 심화될 미디어의 시간전과 속도전이 야기할 가장 큰 파국은 공동체의 상호연결과 공동의 장소, 공공영역 그리고 공동의 문화가 사라지는 것이다. 문화적 공중의 해체와 소멸이 문화적 다원주의로 예찬되는 상황은 결코 긍정적이지 않다. 미디어 오락의 가속화, 프로슈머의 잠재적 가능성을 주장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을 구경꾼으로 몰아넣는 미디어 산업, 진지한 저널리즘의 소멸과 오락화된 저널리즘의 확산, 파편화되고 극단화된 집단의 양산과 공공영역의 소멸과 함께 나타나는 공동체의 약화는 사회적 기초를 해체한다. 미디어 영역이 파편화된 이익단체들의 전시와 적대적 갈등 무대로 전락할 우려가 있으며, 극단적인 이데올로기의 검증되지 않은 공간이 될 수 있다. 사람들이 자기 자신 이외의 바깥 세계에 대해 더 이상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외부세계를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한 채 실질적인 무능력 상태에 빠지게 된다.

따라서 공영방송의 선택지는 문화주의적 방송론을 견지하는 것이어야 한다. 공영방송이 다른 디지털 미디어와 전면적으로 경쟁하며 상업적인 미디어 경쟁의 논리에 종속됨으로써 발생하고 있는 문제는 이미 우리가 경험하고 있다. 진지하고 신뢰할 수 있는 뉴스와 시사 프로그램의 위기와 쇠퇴, 질 높은 드라마와 시리즈물의 쇠락, 공동체를 위한 개방적인 공공영역의 소멸, 풍부한 교육과 지식의 연결을 위한 노력의 감소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방송은 단순한 기술이나 소비재로 사고될 수 없다. 매스미디어로서 정기적 문화 체계의 하나였던 방송의 사회문화적 역할의 쇠퇴를 당연하게 간주해서도 안 될 일이다.

방송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이 세계에서 우리가 만나고 듣고 보고 나누는 정보, 프로그램, 콘텐츠들은 누군가에 의해 소유되고 기획되며 조정되는 것이다. 뉴스, 날씨, 스포츠, 코미디, 드라마, 영화, 음악, , 광고 등 일련의 문화적 참조물들은 결코 침묵하거나 중립적이지 않고 우리를 어디론가 안내하고 이끌며 자극한다. 현재 방송은 대중이 근대적 산업사회 체계 내부에서 적절한 자기 위치를 찾도록 하거나 그들에게 저렴한 여가와 오락을 제공했던 근대적 역할의 전환 과정에 놓여 있다. 방송은 근대화, 민족주의, 정치적 발전, 경제적 발전과 기술적 확산, 자유화 그리고 인간의 발전과 같은 근대적 발전 궤적 위에서 가장 집단적이고 대중적인 미디어로서 기능해 왔지만, 이제는 이 역사적 궤적을 넘어 새로운 인간 삶의 요소들과 결합해야 한다. 방송은 공동체의 공감과 대화의 과정으로서 미디어 개념을 확립해야 하며, 공동체를 위한 개방적인 공공영역과 공통의 문화를 창조해야 한다.

방송이 여전히 방송으로서 존재하기 위해 자신의 속도를 늦추고 자신만의 구별되는 시간을 창조해야 한다. 자신의 뉴스가 실시간 검색의 상위 순위를 차지하기 위해 속도전을 벌이지 않아야 하고, 콘텐츠 생산의 속도전을 요구하지 않아야 한다. 프로그램의 충분한 기획과 검토, 밀도있는 생산을 위한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그동안 오랫동안 실패를 거듭했던 예술과 교육적 기능을 새롭게 창안해야 한다. 방송은 상업주의 문화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대중과 각별히 친숙하게 밀착하고 소통한다는 점에서 매우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미디어이다. 따라서 여전히 방송은 문화주의적 미디어론을 고민해야 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한 토대와 방법을 찾아야 한다.

특히 공영방송은 수신료를 통해 기본적인 재원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미디어에 비해 상대적인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 여기에 거대 조직을 갖추고 잇으며, 오랜 생산의 경험과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또 지난 세월 동안 수 많은 비난에 직면하기도 했지만 그 어떤 미디어에 비해 정치, 사회, 문화적 영향력을 크게 가지고 있다. 생산과 유통, 소비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 연결된 물질적, 인적, 지식적 자산을 가지고 있으며, 사회적인 문화 장치로서 기능해 왔다. 공영방송은 디지털 시대의 어떠한 혁신 속에서도 여전히 사회적 중심 매체로 존재할 것이다. 따라서 최고도 디지털 미디어 환경과 경쟁 속에서 디지털 경쟁 모델과 속도전의 전략 보다 문화 모델을 다듬고 발전시켜야 한다. 공영방송은 자신의 무대를 개방해야 한다. 공영방송은 확장된 창작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 보다 더 많은 예술가와 저널리스트, 미디어 생산자들에게 창조성과 자유로운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비릴리오의 생각을 인용하자면, 그는 실시간 속보의 즉자적인 무비판적 보도 관행을 제어할 전통적 활자매체의 심도있는 분석 보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이러한 매체들이 온라인 저널을 동시에 운영하거나 온라인으로 전환하는 것이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현실적으로 중요한 일이지만 언론 고유의 역할이라는 점에서 보자면 부차적인 문제라고 판단했다. 그는 오히려 선정적 실시간 보도의 일반화와 뉴스의 스펙터클화에 저항하면서 전통적 언론의 역할을 찾는 일이 중요하다고 본다. 비릴리오는 이 말을 왜 하고 있는 것일까? 그는 전통적인 미디어가 궁극적으로 무엇을 행하고자 하는지를 우선적으로 질문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모두가 디지털 전략을 채택하며 문화주의적 패러다임을 포기할 때 누군가는 미디어의 사회문화적 역할에 대해 진지하게 다시 사고해야 한다. 장 루이 미시카(Jean Louis Missika)공적 공간과 정치 생활에 있어서 토론을 동시화하고 집중화하는 도구로 사용되어 온 텔레비전이 주변화될 때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가늠해보자고 제안한다. 그에게 지금은 일종의 과도기이다. 수 많은 가능성을 가진 새롭고 대안적인 미디어가 출현하고 있지만 이들의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따져 보아야 한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질문한다. “새롭게 등장한 세계적 초대형 미디어들이 독특한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그런데 과연 어떤 역할일까? 기본적 정치 정보를 제공하고 각국의 논의를 조직하는 미간 정치기구로 이들을 볼 수 있을까? 그렇게 할 수 있는 정당성이 이들에게 있기는 할까? 규제는 또 어떻게 이루어질까? 글로벌과 로컬은 어떻게 조화를 이루게 될까? 새로운 공적 공간에서 정보의 전문화는 어떤 형태를 취할 것인가? 명성은 어떻게 구축될 것인가?” 미시카 또한 텔레비전의 미래에 대해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하지만 그는 시민들이 충분한 자원과 덕성을 바탕으로 스스로 필요한 공적 공간을 재건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제 공영방송은 선택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이 시간은 공영방송 내외부의 문화주의적 미디어론의 지지자들의 시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