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al-Liberal & Social Democratic

사민주의 정치의 미래를 말하다 ① “제대로 기능하는 국가가(국가를 만드는 일이) 궁극적인 비전은 아니다”

drydreamer 2026. 10. 29. 17:06

카트리나 슐레거(Catrina Schläger)와 니나 네처(Nina Netzer)가 10월 26일에 “Vanilla, with a twist - What social democracy has in common with vanilla ice cream — and how it can turn that into a strength”(바닐라에 대한 색다른 해석 – 사회민주주의와 바닐라 아이스크림의 공통점, 어떻게 강점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까)이란 글을 <International Politics and Society>에 발표했습니다. 이들의 글을 정리해 봅니다.

 

슐레거와 네처는 사민주의 정당이나 사민주의 정치를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비유했던 어느 청년의 말로 글을 시작합니다. 그 청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민주의 정당들이 “소수의 사람들 만이 불쾌하게 여기고 누구나 좋아할 만하지만, 누구에게도 큰 의미를 갖지 못하는 바닐라 아이스크림 같다.”

 

바닐라 아이스크림은 거의 모든 음식과 잘 어울리고 거부감이 크지 않지만, 그렇다고 ‘최애’ 아이스크림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습니다. 사민주의 정당도 소수 만이 불쾌하게 여기고 누구나 좋아할 만하지만, 누구에게도 큰 의미를 갖지 못하는 정당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사민당이 어떻게 독자적인 정체성을 되찾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노동자를 대변하고, 국민의 일상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며, 국가의 정책 수행 능력을 강화하고, 확고한 신념으로 당의 가치를 옹호하며, 공동의 정치적 프로젝트 아래 다양한 사회 집단을 통합하는 민주적이고 국제주의적인 좌파 정당으로서 어떻게 차별화할 수 있을까요?

 

사회민주주의의 문제는 올바른 정책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사회민주주의는 사람들의 물질적 이익, 정치적 정체성, 그리고 믿을 만한 사회 변화의 약속을 하나의 정치적 프로젝트로 통합하는 능력이 점점 부족해지고 있습니다.

 

이는 독일 사회민주당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전 세계 사회민주당들이 압박을 받고 있습니다. 국가별로 상황은 크게 다르지만, 각 정당이 직면한 압력은 유사합니다. 전통적인 유권자 충성도의 약화, 기존 정당 시스템의 붕괴, 우익 포퓰리즘 운동의 부상, 그리고 정치 제도에 대한 불신 등이 그것입니다. 따라서 새로운 사회민주당 강령을 작성하는 과정은 단순히 기존 정책을 업데이트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21세기 사회민주주의의 가치를 재정립하는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해외 사례를 살펴보는 것이 완벽한 청사진을 제공하지는 않지만,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해답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어떤 영역에 주목해 왔는지에 대한 단서를 제공합니다.

 

첫째, 국민의 물질적 걱정에 대응하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사람들이 물건을 살 여력이 있는지 여부만이 아니라, 주택, 에너지, 교통, 의료 및 복지 서비스, 교육, 식료품 가격 상승에 대해 정치인들이 신뢰할 만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입니다.

 

둘째, '성과주의'입니다. 즉, 정치인들은 국민에게 단순히 약속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실질적인 행동을 통해 약속을 이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통찰력을 정부 정책으로 옮기려는 다양한 시도가 있었습니다. 스페인에서는 페드로 산체스 총리가 이끄는 사회당(PSOE)이 대중교통 요금 할인, 주택 정책 개혁, 공공 투자 등의 조치를 시행했습니다. 그레이터 맨체스터에서는 앤디 번햄의 ‘비 네트워크(Bee Network)’가 핵심적인 일상 기반 시설을 공공 통제하에 되돌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스웨덴 선거 운동에서는 마그달레나 안데르손 후보가 가계 재정 지원을 위한 임시 은행세 도입을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접근 방식들의 공통점은 재정적 지원이라는 개별적인 정책이 아니라 시스템적인 해결책, 즉 필수 서비스에 대한 국가 제공, 주택 임대 시장 개입, 저렴한 교통수단, 공공 인프라 및 부유세 도입 등을 통해 국민들의 부담을 해결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경제성 확보에만 초점을 맞추고 실질적인 성과만을 내세우는 것은 자유, 공정성, 연대라는 가치를 대체할 수 없습니다. 제대로 기능하는 국가가(국가를 만드는 일이) 궁극적인 비전이 될 수는 없습니다. 객관적인 성과가 사람들의 주관적인 경험과 자동으로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정치적 소통은 공공 투자 프로그램과 사람들의 일상 경험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합니다.

우익 정당들이 성공을 거둔 이유 중 하나는 분노, 원한, 소외에 대한 두려움, 타자화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동원하는 능력 때문이었습니다. 중도 정당들은 대개 기술관료적인 공식과 실용적인 정책 패키지로 대응하거나 우익의 언어를 되풀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스페인에서는 산체스 총리가 전혀 다른 어조를 보였습니다. 그는 사회민주주의자, 페미니스트, 진보주의자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탈리아에서는 민주당의 엘리 슐라인 대표가 야당으로서 당의 독자적인 좌파적 목소리를 되찾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슐라인 대표는 우파가 특정 집단을 희생양 삼는 행태에 정면으로 맞서며, 문제는 이민자, 여성, LGBTQ+ 사람들이 아니라 '진정한 적은 불평등'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녀는 사회 정의, 기후 정의, 평등권, 불안정한 고용에 대한 투쟁, 그리고 양질의 일자리를 위한 노력을 하나의 정치적 프로젝트로 통합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접근 방식으로는 앤서니 앨버니즈 대표의 '호주식 애국주의'를 들 수 있는데, 이는 소속감과 정체성이 우파만의 문제가 아님을 보여주려는 것입니다.

 

독일에서 사민당(SPD)은 관료적인 언어 뒤에 가치를 숨기거나 정치적 역풍에 굴복하는 대신, 정치를 이념적 논쟁으로 다시 다뤄야 합니다. 그래야만 더욱 명확한 좌파적 정체성을 제시하고 독자적인 정치적 입지를 구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은 현행 권력 구조에 대해 더 많은 의문을 제기하고, 사회의 현재 불균형으로 누가 이득을 보고 있는지, 그리고 현상 유지가 누구에게 이익이 되는지 명확히 밝히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하지만 전통적인 노동자 계급이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인식해야 합니다. 20세기와 비교했을 때 오늘날의 노동자 계급은 여성과 소수 민족의 비율이 훨씬 높으며, 작업복을 입고 있는 모습은 훨씬 보기 드뭅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노동당으로서 사민당은 노동과 자본의 대립이라는 핵심 이념적 정체성을 확고히 지켜야 합니다.

 

동시에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연대와 다양성에 기반한 공동체를 옹호하는 좌파적 정체성을 제시해야 하며, 이러한 정체성은 존엄성, 소속감, 결속력의 원천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좌파적 제안은 무엇을 바꾸고자 하는지 설명해야 합니다. 많은 국가에서 급진적인 변화, 심지어는 모든 것을 완전히 뒤엎고자 하는 열망이 강하게 나타납니다. 우파와 권위주의 세력은 이러한 감정을 이용하여 민주주의 질서를 파괴하겠다고 공언하고 있습니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이러한 파괴적인 사고방식에 저항해야 합니다. 동시에, 현상 유지를 옹호하는 고루한 사람들로 비춰지는 것도 피해야 합니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은 기존 권력 구조에 대해 더욱 심도 있게 질문하고, 현재 사회의 불균형으로 누가 이득을 보고 있는지, 그리고 현상 유지가 누구에게 이익이 되는지 명확히 밝히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영국에서 번햄은 지역별 서비스 제공과 주요 공공 서비스에 대한 국가 통제를 정책 의제의 핵심으로 삼았습니다. 뉴욕의 조란 맘다니는 급진적인 요구와 함께 임대료, 교통, 보육, 생활비와 같은 구체적인 현실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했습니다. 그의 접근 방식의 강점은 사람들이 정치를 통해 부의 분배, 공공재, 그리고 일상생활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인식하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사회민주주의 정당 역시 변화에 대한 열망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와의 단절을 표명하는 것은 단순한 보여주기식 행보에 그치지 않고 진정성을 갖춰야만 합니다. 사민당(SPD)의 경우, 이는 단순히 새로운 인물이나 새로운 소통 방식을 도입하는 것만으로는 개혁 과정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변화를 약속하는 정당은 구체적으로 어떤 구조적 변화를 추진할 것인지 명확히 제시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다음 질문은 이것입니다. 누가 이런 프로젝트를 지지할까요? 많은 국가에서 사회민주주의 정당은 더 이상 자체적인 과반수 지지에 의존할 수 없습니다. 진보 진영의 다수가 광범위한 사회민주주의 정당을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결집할 것이라는 기존의 생각은 더 이상 통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노동조합, 복지단체, 여성 운동, 청년 단체, 기후 운동, 시민 사회 단체와 같은 사회 구성원들과는 물론 다른 정당들과도 적극적으로 연대를 구축해야 합니다.

 

네덜란드에서는 녹색당(GroenLinks)이 2026년 6월 사회민주당인 PvdA와 합병하여 새로운 정당인 네덜란드진보당(PRO)을 결성했고, 브라질에서는 룰라의 노동자당(PT)이 광범위한 민주주의 지지 및 반(反)보우소나루 연합의 일원으로 정권을 되찾았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연합은 시간, 신뢰, 대화는 물론 공통된 전략적 언어를 필요로 합니다.

 

독일 사민당 역시 연대를 구축해야 합니다. 분열된 사회에서 진보적인 다수파를 형성하는 유일한 방법은 연대를 구축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국제적 비교는 사민당과 그 재정립에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요? 새로운 입지를 구축하려면 사민당이 누구 편인지, 어떤 권력 구조를 바꾸고자 하는지, 그리고 21세기 사회에서 어떻게 노동, 자유, 연대, 민주적 통치를 옹호하는 정당으로 남을 수 있는지를 명확히 해야 합니다. 간단히 말해, 다양한 사회적 이해관계가 어떻게 다시 한번 공통된 좌파 정치적 정체성 안에서 하나로 모일 수 있는지를 제시해야 합니다.

 

바닐라 아이스크림은 가장 이국적인 종류는 아닐지 몰라도 독일에서 가장 인기 있고 시장 점유율이 가장 높은 아이스크림입니다. 그렇다면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는 무엇일까요? 바로 진짜 바닐라를 사용한다는 점입니다.